예로부터 신성시 되던 모악산 서쪽 자락에 금산사가 위치해 있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은 진표율사의 주석 이후이다. 금산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륵도량이다. 진표율사는 미륵전과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였으며 해마다 방등계단에서 수계를 주어 불교 교단을 발전시켰다. 고려시대에도 혜덕왕사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미륵신앙은 더욱 확대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소실되었던 44채 중 7채의 건물을 복원한 것으로, 1951년 화재로 인해 선화당이 유실된 이후 67년만의 부활이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를 관통하여 1896년도까지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다스리던 관청이며, 동학농민혁명 때 전주화약을 맺었던 장소이다.
1894년 1년간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대규모 민중 항쟁이었으며 피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진행된 대규모 농민 대중에 의한 혁명이다.
내장사 용굴암은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 왕조실록과 국보 제 317호 조선태조어진을 지켜낸 역사의 현장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으로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소실되어 안의와 손홍록 등이 용굴암으로 옮기며 일년이 넘도록 지켜냈다. 깊은 산중 으로 실록과 어진을 옮겨가며 보관했던 목숨을 건 370일의 기록이다.
백제 무왕은 익산(금마)으로의 천도와 불교의 미륵신앙을 구현하기 위해 3탑-3금당이라는 독특한 사찰구조로 미륵사를 만들었다. 백제인들은 이 미륵사를 통하여 누구나 평등한 삶을 염원했다. 모든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려는 간절한 소망이자 고대 백제인들의 신념의 결정체다.
군산항은일제강점기 쌀수탈항이다. 100여년된 유적물인 뜬다리 부두 부잔교는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보여준다. 일제수탈의 상징적인 시설물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가 우수하다. 부잔교는 간조와 만조의 수위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시설이다. 현재는 1930년대 초반에 설치된 3기의 뜬다리 형태 구조물이 현존하고 있다.
예로부터 논산은 교통의 요충지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길목 이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로 쳐들어왔고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로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끝내 오천결사대와 함께 장렬히 최후를 마쳤다.
5, 6호분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1500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덤의 유물 중 묘지석으로 인하여 무덤의 주인이 백제 25대왕 무령왕임을 알 수 있었고 4600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과 폭넓은 대외교류를 증명하고 있다. 웅진백제 왕실의 자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후원 구실을 하였으며, 전쟁 때에는 사비도성의 최후를 지키는 장소가 되었던 곳이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쳐들어와 왕성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당하고, 민족 스스로의 발전이 중단되는 고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민족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공간이다. 백범 김구기념관은 통일독립에 일생을 바치신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건립되었다.
불국사는 당시 불국토를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 당대인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사찰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석굴암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